참고자료 베리타스알파/김경숙기자

▲ 현 고2가 입시를 치르는 당장 2015학년 대입에 어학특기자전형 선발인원이 대거 축소된다. 연세대만이 유일하게 어학특기자전형 정원확대를 발표한 가운데 경희대 건국대 동국대 고려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이 폐지 혹은 축소로 가닥을 잡은 상황. 축소인원을 밝힌 대학만 계산해도 최소 500명 가량의 정원이 사라진다. 문제는 내년 수시를 9개월 앞두고 그간 준비해온 고2학생들이다. 한 외고 관계자는 “학생들을 내신 수능 없이 어학점수만으로 대학 갈 수 있다고 유인해온 일부 영어학원들이 이젠 집단반발과 소송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며 “어른들 장난에 학생들만 난감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2015학년 대입 기본계획은 19일로 늦춰진 대교협의 확정발표 이후 드러나겠지만, 현재 상당수 대학들이 어학특기자전형의 폐지 및 축소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올해 각 94명 198명 233명을 어학특기자전형으로 선발한 경희대 건국대 동국대는 내년 입시부터 어학특기자전형을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세 학교에서만 525명의 어학특기자전형 선발인원이 사라진 셈. 고려대와 한양대 성균관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도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고려대는 올해 300명에서 내년 280명으로 20명을 줄였고, 한양대는 올해 155명에서 내년 105명으로 50명을 줄여 선발규모를 축소한다. 한양대는 어학과 관련이 적은 공과대에선 내년부터 어학특기자를 선발하지 않는다. 선발하는 학과에서도 공인어학성적을 폐지하고 외고/국제고 학생들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외국어교과 15단위 이수’ 기준도 폐지했다. 현재 축소규모를 밝힌 대학만 해도 사라진 정원이 무려 575명. 반면 연세대만이 유일하게 국제계열특기자전형을 확대한다. 올해 313명에서 내년 393명으로 80명을 늘린 선발계획을 밝혔다.

각 대학이 어학특기자전형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상황은 교육부 정책과 맞물린다. 교육부는 지난 9월23일 ‘2015학년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확정발표하며, 대입간소화정책과 함께 각 대학의 수용여부에 지원사업과의 연계를 못박은 바 있다. 2015학년 대입전형 기본사항 중 하나가 바로 ▲특기자전형의 모집규모 축소 유도였고, 교육부는 이를 포함한 ▲수시 최저학력기준은 등급으로만 설정하고 과도한 등급의 완화 유도 ▲논술고사는 가급적 시행하지 않도록 유도 ▲교과중심의 문제풀이식 구술형 면접과 적성고사는 자율적으로 지양 ▲수시 모집요강은 당초(5월말)보다 앞당겨 입학 전년도 4월말까지 발표 등을 권고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애초 예상 1200억, 확정 410억원의 예산이 편성된 ‘공교육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못박았다. 해당 사업은 대입전형에서 ▲공교육연계 ▲전형간소화(수시4개/정시2개) ▲사교육유발 정도 등을 평가해 재정을 차등지원함으로써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반값등록금정책과 전형료반환지침 등 각종 예산압박을 받고 있는 대학 입장에서 교육부가 ‘권고’라 밝히긴 했어도 그 단호한 입장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수시4개 중 ‘버리는 카드’ 된 특기자전형

교육부의 권고에 따르자면, 특기자전형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대학별로 수시는 4가지 전형유형만 허용했다는 점이 핵심요인이다. 공교육연계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을 유지해야 한다. 논술전형은 수시전형 중 가장 덩치 큰 전형이라  대학 입장에선 배제하기 힘들다. 결국 제한된 4개 중 3개 전형을 확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예체능 실기고사가 불가피한 여러 대학은 실기전형까지 4개로 맞추고, 대신 일부에 불과한 특기자전형을 폐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교육부의 ‘수시4개’ 발표와 ‘입학사정관 명칭폐지’ 발표가 나왔을 당시만 해도 입학사정관전형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명칭은 폐지해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자 교육부의 ‘공교육연계 관련 사업’의 예산압박 방침에 따라 특기자전형 폐지가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교육부는 특기자전형 축소방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특기자전형을 그간 많은 논란을 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성적 좋은 특목고생을 선발하기 위한 전형으로 변질됐다’ ‘사교육시장을 키웠다’는 반대여론은 얼마든지 재반론의 여지가 있다. 각 대학의 자율권을 인정하는 상황에선 특목고생을 위한 제도를 도입, 적은 수의 일부 학생을 수용하거나 어학실력이 뛰어난 일반고학생의 특기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시장을 키운다는 지적 역시 사실상 가장 큰 사교육시장은 수능시장이라는 상황 때문에 반박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들이 외고생 영입을 위해 어학특기자전형을 무분별하게 운영한 점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대학들은 어학특기자전형을 영문학 중문학과 같이 어학중심학과가 아니라 경영학 정치학 심리학 국문학처럼 무관한 학과에도 적용하면서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심지어 공대는 물론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대에도 어학특기자전형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현재 어학특기자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 대학이 해당전형으로 대부분의 학과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외고생을 손쉽게 선발하기 위한 전형으로 변질됐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을 빌미로 공교육을 무시하는 사교육 시장이 버젓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해당전형을 운영하는 여러 대학의 전형내용을 살펴보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걸지 않고 내신성적마저도 적용하지 않는 대학들이 상당하다.  ‘수능 내신 없이 공인어학성적만으로 대학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영어학원들이 등장하고, 외고/국제고 학생뿐 아니라 수능과 학교공부는 팽개치고 어학인증을 따는 데만 몇 년을 투자하는 일반고 학생들이 양산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 어학특지자전형의 파행은 대학과 학원의 이기심이 만든 합작품"이라며 " 영어 몰입교육이 만들어낸 흐름에 편승해 이제 손을 대야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3년예고제 한다며?’ 당장 고1, 고2는 어쩌나

결국 피해는 또 수험생 몫으로 돌아간다. 그간 지적되어온 어학특기자전형의 폐해를 막고자 교육부가 팔 걷어 부치고, 대학들이 이를 수용하며 정리에 나선다 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3년예고제’를 운운해온 정부가 당장 내년 입시에 폐지까지 몰아붙인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해당 대학의 해당 전형만을 염두에 두고 오랜 기간 준비해온 수험생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학특기자전형의 폐지 움직임에 따라 지난 11월30일 네이버카페 ‘어특모(어학특기자모임)’가 생겨났고, 관련 조직적 대응을 준비/진행하고 있다. 해당 카페는 "어학특기자를 준비해왔던 1만명의 학생 및 학부모들의 화합의 장"으로 이 카페를 개설했으며,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소통의 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또 "지금까지의 시간과 비용이 휴지통 앞에 섰다"며 온라인 반대서명운동과 항의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고에도 어학에 특기가 있어 지원하려는 학생이 많고, 해외에서 일부러 국내로 들어오기도 했다"며 "입시를 바꿀 땐 충분한 기간을 두고 예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서명운동 외에도 교육부를 찾아가 항의하고 청와대 교육부 대학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어특모’엔 어학특기자전형 폐지와 관련 청와대 등에 민원을 제기한 항의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고2 학생은 “어린 시절 가정문제로 해외에 있다가 국내로 들어왔는데 적응 못하던 와중에 어학특기자전형을 알고 희망을 찾았다”며 “그간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아이가 고등학생 때부터 영어특기자전형을 목표로 교내활동과 봉사활동을 해오고, 공인인증성적을 따기 위해 하루 대여섯 시간을 토플공부에 쏟았다”는 한 학부모는 “특기자전형이 없어질 줄 알았으면 내신이나 수능공부에 몰두했을 것”이라며 “박근혜정부는 ‘대입3년예고제’를 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전형을 없애면 어떡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오랫동안 이 전형을 준비해왔는데, 2015학년 대입수시 모집을 불과 9개월 앞두고 전형을 없애면 어떡하느냐"며 지난달 대교협과 대학들을 상대로 2015학년 대입전형 기본사항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 중앙지법에 냈다.

교육부 대학의 무리한 추진도 문제지만.. 사교육의 책임전가도 문제

교육부 관계자는 “어학특기자전형을 폐지하라는 게 아니라 부적절한 부분을 바로잡으라 한 것”이라며 “해당 전형의 폐지나 축소는 전적으로 대학총장의 권한으로 ‘대입3년예고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학 입장은 다르다. 한 대학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권고’라 표현하지만, 예산이 달린 상황에서 문제소지가 있는 부분은 당장 없앨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권고가 권고만으로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결국 교육부 입김에 대학도 폐지 및 축소로 가닥 잡았다는 것. 한편 다른 대학의 입학처장은 “올해 진행된 수시 특기자전형은 문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교육부의 지침이 없다 하더라도 일부 축소하고 방향을 틀 예정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교육관계자는 “교육부가 뒤늦게라도 대입전형을 정돈하려는 상황은 바람직하지만, 매번 한 치 앞을 못 보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간 3년예고제를 주장해온 정부가 당장 2015학년 입시부터 예산을 들고 손대기 시작해 벌어진 문제다. 대학들이 2017학년이 아닌 당장 2015학년부터 손을 대게 한 ‘대입간소화정책’이 근거다. 대학들은 수시4개 중 특기자전형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당장 수시를 9개월 앞둔 고2와 상당기간 준비해온 고1만 피해자가 됐다”며 “이번 정부의 교육부는 정책에 따른 풍선효과는 커녕 정책발표 이후 즉각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조차 예상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상당수 영어학원들 역시 수험생과 학부모를 앞세워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것 같다”며 “영어학원들 역시 책임을 져야 함에도 교육부와 대학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고, 여기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휘말려 있는 듯해 안타깝다”고도 덧붙였다. 한 외고 관계자는 “일부 대학은 수능은 물론 내신도 안 보고 오직 어학공인점수만으로 선발해왔고, 이번 반대여론을 이끄는 건 일부 영어학원들”이라며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만 힘든 꼴”이라고 개탄했다.